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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서버를 구축하고 나면 한 가지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전력 소비’와 ‘소음’ 문제입니다. 24시간 내내 서비스를 돌려야 하는 웹 서버나 CCTV 녹화용 서버라면 당연히 켜두어야 하겠지만, 가끔 영화를 볼 때만 쓰는 미디어 서버나 백업용 서버를 하루 종일 켜두는 것은 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전기요금도 문제지만, 한밤중에 웅웅거리는 하드 디스크 공진음은 가족들의 단잠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필요할 때만 밖에서 원격으로 켤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해결해 주는 기술이 바로 **Wake-on-LAN (WoL)**입니다. 말 그대로 LAN선(네트워크)을 통해 잠들어 있는 컴퓨터를 깨우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마스터하면, 여러분은 지구 반대편 여행지에서도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집에 있는 고성능 데스크톱을 켜고, 필요한 파일을 꺼내본 뒤 다시 끌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온디맨드(On-Demand)’ 컴퓨팅 환경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WoL의 작동 원리인 ‘매직 패킷’부터 시작하여, 메인보드 바이오스 설정, 윈도우와 리눅스 OS 설정, 그리고 가장 중요한 네트워크 라우팅 설정까지 상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1. WoL의 원리: 컴퓨터는 자면서도 듣고 있다
컴퓨터의 전원을 끄면 모든 부품이 작동을 멈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전원 코드가 꽂혀 있다면, 일부 부품은 아주 미세한 전력을 소모하며 ‘대기 상태’를 유지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네트워크 인터페이스 카드(NIC, 랜카드)**입니다.
랜카드는 컴퓨터가 꺼져 있어도 네트워크 케이블을 통해 들어오는 신호를 감시합니다. 평소에는 들어오는 데이터를 무시하다가, 특정한 암호가 담긴 데이터 패킷을 발견하면 즉시 메인보드에 신호를 보냅니다. “일어나! 주인님이 찾으셔!” 이 신호를 받은 메인보드는 전원 공급 장치(파워서플라이)를 가동해 컴퓨터를 부팅시킵니다.
매직 패킷 (Magic Packet)
랜카드를 깨우는 이 특정한 암호를 **‘매직 패킷’**이라고 부릅니다. 이 패킷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 헤더:
FF FF FF FF FF FF(16진수FF가 6번 반복됨) - 데이터: 깨우고 싶은 랜카드의 MAC 주소가 16번 반복됨
예를 들어, 내 컴퓨터 랜카드의 MAC 주소가 00:11:22:33:44:55라면, 매직 패킷은 다음과 같이 구성됩니다.
FFFFFFFFFFFF001122334455001122334455... (16번 반복)
네트워크상의 모든 기기는 이 패킷을 수신하지만, 오직 자신의 MAC 주소가 적혀 있는 기기만이 반응하여 잠에서 깨어납니다. 이것이 WoL이 IP 주소가 아닌 MAC 주소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이유입니다. (꺼진 컴퓨터는 IP 주소를 할당받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2. 1단계: 하드웨어 및 바이오스(UEFI) 설정
WoL이 작동하려면 하드웨어 레벨에서의 지원이 필수입니다. 다행히 최근 10년 내에 출시된 거의 모든 메인보드는 이 기능을 지원합니다.
BIOS/UEFI 진입 및 설정
컴퓨터를 켜자마자 Del 키나 F2 키를 연타하여 바이오스 설정 화면으로 진입합니다.
제조사마다 메뉴 이름이 다르므로 아래 키워드들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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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관리(Power Management) 메뉴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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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옵션을 찾아 **[Enabled] (활성화)**로 변경합니다.
- PCI Devices Power On
- PCIE Devices Power On
- Wake on LAN
- Power On By PCI-E
- Resume By Onboard 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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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P / EuP 설정 끄기 (중요!)
- ErP(Energy-related Products)는 대기 전력을 1W 미만으로 줄이는 유럽 환경 규제 옵션입니다.
- 이 기능이 **[Enabled]**로 되어 있으면, 전원을 껐을 때 랜카드에 공급되는 전력까지 차단해 버립니다.
- 반드시 **[Disabled] (비활성화)**로 설정해야 랜카드가 대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설정을 마쳤으면 F10을 눌러 저장하고 재부팅 합니다.
3. 2단계: 운영체제(OS) 설정
하드웨어 준비가 끝났어도, 운영체제가 종료될 때 랜카드를 완전히 꺼버리면 소용이 없습니다. OS에게 “끌 때 끄더라도 귀는 열어두라”고 지시해야 합니다.
Windows 설정
윈도우 10/11 사용자는 다음 두 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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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 관리자 설정
시작우클릭 ->장치 관리자실행.네트워크 어댑터에서 이더넷(유선 랜) 드라이버를 찾아 더블 클릭.- [전원 관리] 탭: “이 장치를 사용하여 컴퓨터의 대기 모드를 종료할 수 있음” 체크. “매직 패킷에서만 컴퓨터의 대기 모드를 종료시킬 수 있음” 체크.
- [고급] 탭:
Wake on Magic Packet(매직 패킷 웨이크 온) 항목이 있다면Enabled로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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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시작 켜기 끄기 (Fast Startup)
- 윈도우의 ‘빠른 시작’ 기능은 종료 시 시스템을 최대 절전 모드와 비슷하게 저장하는데, 이 과정에서 랜카드 전원을 차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어판->전원 옵션->전원 단추 작동 설정->현재 사용할 수 없는 설정 변경클릭.- **“빠른 시작 켜기(권장)“**의 체크를 해제합니다.
- 참고: 이 기능을 꺼도 SSD를 사용하는 최신 PC에서는 부팅 속도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Linux (Ubuntu/Debian) 설정
리눅스 서버에서는 ethtool이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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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tool 설치 및 확인
sudo apt update sudo apt install ethtool -
네트워크 인터페이스 이름 확인
ip addr명령어를 입력하여 유선 랜카드의 이름을 찾습니다. (예:eth0,enp3s0등) -
WoL 상태 확인
sudo ethtool enp3s0 # 본인의 인터페이스 이름으로 변경출력 내용 중
Supports Wake-on: pumbg와Wake-on: d또는g부분을 확인합니다.g: 매직 패킷 부팅 활성화됨 (정상)d: 비활성화됨 (설정 필요)
-
WoL 활성화 만약
d로 되어 있다면 다음 명령어로 활성화합니다.sudo ethtool -s enp3s0 wol g -
설정 영구화 (재부팅 후에도 유지) 리눅스는 재부팅 하면 설정이 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systemd 서비스를 만들어 부팅 시마다 적용되게 해야 합니다.
# /etc/systemd/system/wol.service 파일 생성 [Unit] Description=Configure Wake-on-LAN [Service] Type=oneshot ExecStart=/sbin/ethtool -s enp3s0 wol g [Install] WantedBy=basic.target이후
sudo systemctl enable wol명령어로 서비스를 등록합니다.
4. 3단계: 네트워크 및 공유기 설정 (가장 중요)
여기서 많은 분이 실패를 경험합니다. 집 안(내부망)에서는 잘 켜지는데, 집 밖(LTE/5G)에서는 안 켜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 이유는 매직 패킷이 ‘브로드캐스트(Broadcast)’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공유기(라우터)는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브로드캐스트 패킷을 내부망 전체로 뿌려주지 않고 차단합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입니다.
방법 A: 공유기 자체 WoL 기능 사용 (가장 추천)
ipTIME, ASUS 등 대부분의 국산/외산 공유기는 관리자 페이지나 전용 앱에서 WoL 기능을 제공합니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 외부에서 공유기 관리자 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도록 원격 관리 포트를 설정합니다. (보안 주의!)
- 공유기 메뉴의 WoL 기능에서 켜고 싶은 PC의 MAC 주소를 등록합니다.
- 외부에서 공유기 앱이나 웹페이지에 접속해 ‘켜기’ 버튼을 누릅니다.
- 이 방식은 공유기가 내부망에서 직접 매직 패킷을 쏘는 것이므로 100% 성공합니다.
방법 B: 포트포워딩 + ARP 바인딩 (고급 사용자용)
공유기 앱을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의 WoL 앱에서 바로 패킷을 쏘고 싶을 때 사용합니다.
- 포트포워딩: UDP 7번 또는 9번 포트를 내 서버 IP로 포워딩합니다.
- ARP 바인딩 (Static ARP): 공유기가 서버가 꺼져 있어도 IP와 MAC 주소의 매칭 정보를 잊어버리지 않게 고정합니다.
- 문제는 일반 가정용 공유기 중 ARP 바인딩을 지원하지 않는 모델이 많습니다. 이 경우 서버가 꺼지고 수 분 후 ARP 테이블에서 삭제되면 WoL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 브로드캐스트 주소(예:
192.168.0.255)로 포트포워딩을 하는 꼼수도 있지만, 보안상 막혀 있는 공유기가 많습니다.
방법 C: VPN 또는 프록시 서버 활용
집 안에 항상 켜져 있는 저전력 기기(라즈베리파이, IoT 허브 등)가 있다면 그것을 경유지로 활용합니다.
- 라즈베리파이에 VPN 서버(WireGuard 등)를 구축합니다.
- 외부에서 VPN으로 홈 네트워크에 접속합니다.
- VPN에 연결된 상태에서 WoL 앱을 실행하거나, 라즈베리파이에 SSH로 접속해
etherwake명령어를 날립니다.
5. 실전 테스트: 스마트폰으로 켜보기
모든 설정이 끝났다면 스마트폰으로 테스트를 해봅시다.
- Wi-Fi를 끄고 LTE/5G 데이터 모드로 전환합니다. (외부 접속 테스트)
- 앱스토어에서 WoL 앱을 다운로드합니다.
- iOS: Wake Me Up 또는 Wolow
- Android: Wake On Lan (Mike Webb 개발)
- 앱에 서버 정보를 입력합니다.
- MAC 주소: 서버의 MAC 주소 (필수)
- IP/호스트: 우리 집 공인 IP 또는 DDNS 주소 (
myhome.duckdns.org) - 포트: 포트포워딩한 포트 (보통 9번)
- 서버 전원을 끄고 1분 정도 기다립니다. (완전 종료 확인)
- 앱의 버튼을 누릅니다.
- 서버의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거나, LED가 켜지는지 확인합니다.
6. 문제 해결 (Troubleshooting)
Q. 전원 끄고 직후에는 잘 되는데, 한참 뒤에는 안 켜져요. A. 전형적인 ARP 테이블 삭제 문제입니다. 공유기가 “아, 이 IP 쓰던 놈 전원 꺼졌네? 목록에서 지워야지”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공유기 자체 WoL 기능을 사용하거나, ARP 바인딩을 지원하는 공유기로 교체해야 합니다.
Q. 무선(Wi-Fi)으로 연결된 노트북은 WoL이 안 되나요? A. 대부분 안 됩니다. ‘WoWLAN (Wake on Wireless LAN)‘이라는 기술이 있지만, 전원이 꺼지면 와이파이 연결도 끊어지기 때문에 신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유선 연결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Q. 외부 접속은 포기하고, 집 안에서만 쓰고 싶어요. A. 그렇다면 포트포워딩이나 DDNS 설정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 같은 공유기에 연결된 상태에서 내부 IP와 MAC 주소만 알면 바로 작동합니다.
7. 마치며: 스마트한 에코 라이프의 시작
WoL 설정을 마쳤다면, 이제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든 필요할 때만 서버를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며 흐뭇해할 수도 있고, 갑자기 필요한 자료가 생겼을 때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서버를 켜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켜진 서버를 다시 원격으로 끌 수도 있어야겠죠?
SSH 접속을 통해 sudo shutdown now 명령을 내리거나, 원격 데스크톱을 이용해 종료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Home Assistant 같은 IoT 플랫폼과 연동하면 “시리야, 서버 켜줘”와 같은 음성 제어도 가능합니다.
작은 설정 하나가 여러분의 홈서버 라이프를 훨씬 더 쾌적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지금 바로 바이오스 화면으로 진입해 보세요!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렇게 아낀 전기세와 자원으로 더 재미있는 것을 해보겠습니다. 바로 **“미디어 서버 3대장: Plex vs Jellyfin vs Emby 완벽 비교”**를 통해 나만의 넷플릭스를 구축하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